728x90




2부 줄거리

괜히 소문나면 좀 그렇고. 이런 건 기자들도 모르고, 기사가 없다고 해도 블라인드나 개발자 커뮤니티에 퍼지면 저희는 뭐가 되죠. 그냥 개쪽이에요. 지난번 인디게임 하나 베꼈다가 개같이 까이는 거 봤잖아요


- 팀 회식 도중에 연거푸 쏟아져나온 팀의 불화, 관리자로서 대표의 지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김 PD. 그도 사람인지라 속내를 다 털어놓고 팀 와해 분위기까지 간 상태에서 대표한테 날아온 문자 한 통...


2017/04/19 - [뉴스 센터/기획] - 안녕하세요, 저는 13년 차 개발자입니다


2017/11/10 - [뉴스 센터/기획] - 개발자로서 자존심은 개뿔. 3개월 안에 나도 개발자로 입봉한다!


술도 잘 안 먹는 양반이 벌게진 얼굴로 회식하는 고깃집까지 찾아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취기도 올라와서 그런지 기분을 알 수가 없다. 오늘 퍼블리셔 미팅 갈 때 화장실부터 찾을 때부터 뭔가 잘 안 풀리는 가 싶어서 같이 담배 하나 핀 게 전부였다.


그랬던 양반이 얼굴이 벌게져서 팀 회식하는 데까지 왔다. 예전에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를 떠올렸을 때 폭탄을 가지고 왔다고 직감했다. 잠시 밖에 나가서 이야기할까 했는데, 바로 소금구이를 주문하고 소맥 제조를 시작한다. 




"자 고생하는 울 XX팀, 내가 정말 대표로 술 처음 말아준다, 소프트니까 부담 갖지 말고, 자 각자 준비! 그럼 준비됐으면 시작해보자고!"


"대표님, 저 잠시 화장실 좀...그리고 잠깐 담배나 피우죠"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회식 때 보던 풍경과 닮았다. 분명 이건 폭탄이다 싶어서 대표를 끌고 나왔다.


"대표님, 아니 형! 나 이거 예전에 본 적 있어. 애들 배부르게 먹었는데, 저거 시키고 술 한잔 말아주고. 말도 안 되는 거 설득하려고 하는 거지. 당연히 설득 안 되면 애덜 아니 팀 폭파시킬 거잖아. 내 보면서 말해봐. 그 더러운 거 내가 한다고 했잖아."


"야! XXX. 너 나 못 믿냐. 내가 아직도 예전 실장으로 보이냐? 욕을 먹어도 내가 먹어. 실무자가 뒷담화 소리 들으면서 애덜 통제할 수 있겠어. 나도 너 믿고, 지금까지 이렇게 온 거야 새끼야."


대표랑 같이 들어오는 나를 보는 놈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중에서 파트장이 먼저 원샷을 하더니 자기 잔을 대표한테 준다. 이때 정말 내가 말렸어야 하는 직감도 이 캐릭터가 대표한테 술잔을 주고, 따라주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사실 이 파트장도 내가 데려왔다. 과거 사수와 부사수에서 지금 대표와 실장이 된 것처럼 파트장은 나와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였다. 당연히 나와 비슷한 성향과 기질을 가진 놈이었다.




"대표님, 저희 회식 때 처음 오셨네요. 이 시간에 올 정도면 중요한 거 같은데 말씀하세요."


"오! 역시 이 파트장, 예전 실장의 모습을 보는 것 같네. 좋아 궁금한 건 나중이고, 지금은 내 할 말만 한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자 그럼 좋은거? 나쁜거? 어떤 걸 먼저 듣고 싶냐?"



다들 술은 취했어도 대표를 일제히 쳐다본다. 어느 정도 짐작했던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늘 계약했다. 개런티도 괜찮고, 너네들이 월급 도둑이라 부르는 놈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우선 협상권까지 넘겼다. 당장 월급은 못 올려줘도 적어도 1년은 마음 놓고 개발만 할 수 있다."


"나쁜 소식부터 알려주기 전에 너네들이 모르고 있던 건데, 김 PD 혼자서 카피캣 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냥 자기 혼자서 독박써서 4주만 주면 똑같이 떠서 준다고 했다. 그런데 너네들 대가리가 총대 메는 동안 저 월급 도둑들 욕할 시간은 있었냐?"



드디어 터졌다. 


"그냥 해주세요. 이 말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다. 너네는 그냥 일만 해. 회사 이미지나 돈 걱정은 내가 해. 


개발자가 개발만 하면 되는 거지, 남자 새끼들이 머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난 분명히 말했다. 월급 안 밀리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회사 이름도 그렇게 지은 거다."


대표의 일갈이 터진 이후에 표정 일그러진 놈, 테이블만 쳐다보는 놈, 고기만 굽는 놈, 물 먹다가 흘리는 놈. 누군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지만, 나는 적어도 몇 번을 본 적이 있다. 항상 결과는 좋지 않았던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다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 만연한 데 분위기를 깨는 이모의 한 마디.


"자 소금구이 나왔어요. 항상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내가 음료수랑 후식 냉면이랑 된장찌개 줄 테니 대신 다 먹고 가요"


밥상머리에서 싸울 수 없는 노릇이라 다른 테이블로 대표랑 단둘이 자리를 옮겼다. 




"대표님, 아까 말한 게 뭐가 좋고, 나쁜 겁니까. 지금 분위기도 안 좋은데 기름도 모자라, 결과적으로 팀 공중분해 시키려고 왔잖습니까. 


그리고 카피캣 독박은 내가 한다고 분명 말씀드렸잖아요. 그걸 왜 애덜한테 말해요? 그런건 자랑이 아니라 x신 인증밖에 안 되잖아요"



"김 PD. 누군 하고 싶어서 이러냐. 야 그래도 너나 나나 개발자인데 우리 게임 1개랑 카피캣 100개. 이 바닥은 포트폴리오를 원하는 게 아냐. 


돈이 원하면 우리 게임보다 카피캣이 먼저다. 내가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냐?"



"그럼 제가 원하는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건 그쪽에서 OK했다. OEM처럼 우리 회사 이름이나 개발팀 어느 누구의 이름도 개발자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아. 


괜히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면 때가 묻은 우리야 그렇다 치고, 쟈들은 자라나는 새싹이잖아."


일이 터졌어도 최악의 수는 모두 피했다. 팀의 공중분해도 없고, 카피캣 팀이랑 신규 팀이랑 마찰도 줄테고, 흔적도 남지 않는 계약 조건에 괜찮은 개런티까지 나쁘지 않았다.


"그럼 대표님 4주만 시간을 주세요, 이 파트장한테 애덜 맡겨놓을 테니 이런 거 혼자서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납품 기한은 언제까지인가요?"


"너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내가 3개월 뒤에 넘긴다고 했다. 물론 3개월을 풀로 채울 필요도 없고, 한 달 고생하면 두 달은 쉬엄쉬엄해. 일부러 그렇게 시간을 뺀 거니까, 그때 세미나 몇 개랑 강사로 몇 번 나가주면 돼!"



역시 허술해 보이는 대표도 어느 정도 수를 읽고, 시간과 자금을 여유롭게 책정했던 것이었다. 카피캣의 트라우마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다음 일정도 윤곽을 잡았던 터라 모든 것은 나쁘지 않았다.


"자 이제 마무리하고 들어가자. 내일부터 또 열심히 일해야지! 나 그럼 먼저 간다"



대표가 먼저 계산을 하고 자리를 떴다. "노래방이나 당구장이나 다트를 하러 가던 일단 애덜 좀 다독여서 다음주부터 빡시게 하자"고 나한테 법인카드를 줬다.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이 파트장이 다가온다.


"그냥 애덜 많이 먹여서 보냈어요. 고기가 조금 남은 거 저기 신대방에서 자취하는 놈한테 줬어요. 


굽든지 삶든지 알아서 하겠죠 뭐. 저기 편의점 앞에서 캔맥이나 하고, 들어가죠"


데자뷰. 불과 몇 년 전 내 모습이 이 파트장에게 묻어 나오는 게 참으로 씁쓸하다.



"PD님. 그 카피캣 저도 껴줘요. 한 명이 하는 것보다 둘이서 하면 금방 끝납니다. 어차피 저도 PM 수업받는다고 생각하고, 일정은 제가 짜볼 테니 중간 관리랑 제가 놓치는 거나 알려줘요."


"이 파트장, 넌 나 대신 애덜 관리해. 이건 나 혼자 하는 게 나아, 너가 벌써 때 묻는 거 시작하면 마지막 자존심까지 없어져. 


굳이 그걸 지금부터 할 필요는 없고. 나중에 내가 요청하면 그때는 군말없이 해주면 돼. 혹여나 잘못되더라도 넌 나보다 대표를 챙겨야 할 위치에 오를 테니, 그전까지 내 손에 똥 묻힐 테니 참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이 파트장이 고마웠다. 그래도 개발자의 자존심은 개발자가 챙겨주는 게 미덕이라 대표한테 배운 게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파트장까지 보내고, 택시를 잡을까 하다가 집사람한테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 잔다고 연락했다.



"마님, 나 오늘 술도 먹고 그래서 택시도 잘 안 잡혀서 찜질방에서 자다가 아침에 들어갈게. 미안해"


"그럼 내일 아침에 갈아입을 옷은 따로 빼놓을 테니, 꼭 갈아입고 다시 출근해. 이 화상아!"



전화를 끊고, 폰 배경화면에 보이는 집사람과 아이 사진을 보면서 무심코 튀어나온 한 마디.


개발자로서 자존심은 개뿔...


4부로 이어집니다.


리뷰10K(review10k@gmail.com)


2017/04/19 - [뉴스 센터/기획] - 안녕하세요, 저는 13년 차 개발자입니다


2017/11/10 - [뉴스 센터/기획] - 개발자로서 자존심은 개뿔. 3개월 안에 나도 개발자로 입봉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