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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달리 여느 해보다 인디게임이라는 키워드가 회자된 적이 없었다. 때로는 창작의 의지를 불태우는 상징으로 통했고, 때로는 인디의 탈을 쓴 얌체 개발사의 포장지로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디게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각자 떠오르는 단어가 다른 탓에 벌어진 현상이다.

연말이 되면 한해를 정리하는 기사가 나오는 가운데 범위를 좁혀 국내 게임업계에서 인디씬에서 벌어진 이슈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적도 없고, 각종 미사여구로 중무장한 채 전방위로 홍보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으로 2016년 국내 인디씬의 이면을 정리했다.

※ 이슈 선정은 일선 취재 현장에서 직간접 취재를 통해 얻어낸 사실을 정리했다. 관점에 따라 선정 기준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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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벌 도전기

국내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개발자와 개발팀은 작년보다 글로벌 빌드에 공을 들였다. 메이저 업계에서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마켓을 장악한 나머지 또 다른 생존방식으로 접근, 오히려 메이저에서 하지 못했던 공격적인 빌드를 출시했다.

예를 들면, 키메이커가 개발한 모바일 액션 RPG는 출시한 지 약 6개월 만에 글로벌 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단적인 비교 대상으로 넥슨의 히트는 출시 두 달만에 글로벌 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극단적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비친 500만 다운로드의 의미는 서로에게 다른 의미다. 1인 개발자로 출발한 게임과 다수의 인원이 업무의 효율화를 앞세운 시스템과 경쟁해서 우위를 점한 것이다.

또한 어비스리움을 위시한 다수의 인디게임이 일본에 출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한국의 인디게임을 전파했다.


2. 합종연횡, 인디씬의 세력화

인디게임의 정의가 개발에서 퍼블리셔로 옮겨가는 특이한 과정이 2016년에 벌어졌다. 메이저에서 진행하던 개발-계약-퍼블리싱-서비스-운영 등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각자 잘할 수 있는 특장점으로 승화, 이전보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일련의 행동을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세력의 의미는 카르텔처럼 부정적인 것이 아닌 일종의 맹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우선 탭 퀘스트부터 이어진 글로벌 진출의 공격적인 사례로 꼽히는 나누컴퍼니는 국내 인디씬에서 스페셜 리스트 그룹으로 통한다. 그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메이저와 달리 확실한 킬러 콘텐츠만을 선별, 성공 사례로 끌어내고 있다.

또 다에리소프트는 개발사로 시작했음에도 게임 출시 전후를 책임지는 마케팅 전문가 그룹으로 탈바꿈, 다에리 유니버스를 구축했다. 단순히 홍보와 마케팅으로 점철된 과정을 더욱 세분화, 그들 만의 세계에서 게임을 알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접근하여 하나둘씩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집행검 키우기와 파스타로 알려진 넥스트도어즈는 '인디게임 얼라이언스'를 구축, 인디씬의 협동조합처럼 서로 상부상조하는 움직임을 진행했다. 메이저에서 크로스 프로모션과 CPI로 통하는 규모의 경제를 인디씬에서 어울리는 시스템으로 재편했다.

그 결과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품앗이 문화를 전파했다.

이 외에도 부산의 맹주 매직 큐브는 인디게임 퍼블리싱 전문가를 겸업, 개발사와 퍼블리셔라는 1인 2역을 해내고 있다. 헝그리앱에서 괴작으로 평가받는 자고 일어나니 번뇌가 넷 시리즈나 웰메이드 게임으로 통하는 스매싱 더 배틀이 이들의 라인업에 포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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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국내 인디씬에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일명 BIC은 전 세계 인디게임 행사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강렬한 색채를 자랑한다. 앞서 언급한 글로벌 성공 사례로 꼽히는 다크 소드도 BIC 출품작 중의 하나였다.

아직 2회차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출품하는 게임의 규모나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메이저와 달리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BIC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인디게임 행사는 많지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페스티벌이 단시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조직위원회의 힘이었다.

그 결과 3일 동안 작년 대비 약 2.7배(2,380명) 증가한 총 6,391명의 게임유저 및 관람객이 찾아와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다. 전시장에는 스웨덴, 일본, 미국 등 전 세계 14개국의 신작 인디게임 100여 편이 총출동했다.


4. 클리커와 키우기 열풍 그리고 멀티 플랫폼

현재 국내 양대 오픈 마켓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장르는 RPG다. 이러한 유행은 국내 인디씬에서 클리커와 키우기 게임으로 이어졌으며, 여전히 출시되고 있는 장르 중 하나다.

시간과 인원, 자본의 제약으로 효율을 꾀할 수 있는 장르로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메이저에서 모바일 RPG의 범람으로 제살 깎아먹기와 차별화에 실패한 게임이 많아지는 추세지만, 국내 인디씬은 조금씩 미묘한 다른 콘텐츠와 시스템으로 생존 방법을 모색했다.

또한 콘텐츠의 힘만 있다면 다른 플랫폼에서 통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스마트 폰이 아닌 PC와 콘솔 버전에 최적화된 빌드를 공개, 실제로 출시하는 국내 개발사가 제법 늘었다. 대표적인 곳이 버프스튜디오다. 이들은 개발에 머물지 않고, 실제 출시까지 진행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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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본 인디게임의 역습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일본 인디게임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개복치나 헌트쿡은 게임 뿐만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문화까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뜸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국내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치열해졌다. 간혹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기준으로 핫이슈 코너에 특이한 게임이 등장한다 싶었다면 일본 게임이 많았다. 

메이저 업계에서 일본에서 성공한 게임들을 공격적으로 출시할 때 틈새 시장을 노린 인디게임도 급격히 유입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어처럼 방치형 시뮬레이션 게임의 강자처럼 다수의 게임을 한글화로 출시할 정도로 일본 게임의 한글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이들이 노리는 지점은 최고 매출 100위가 아닌 300~400위 구간이다. 경쟁자도 적고, 다수의 게임이 한꺼번에 출시되어 동반 상승할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특히 번역기로 어설프게 번역한 문장이 국내에서는 병맛 개그로 통할 정도로 소재와 구성의 참신함이 경쟁력으로 작용, 국내 인디씬에게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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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국내 인디씬에서 이전과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메이저 게임업계에서 사용하는 크로스 프로모션이나 콜라보레이션처럼 하나의 뜻을 모아서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곳은 스페셜리스트 나누컴퍼니, 다에리 유니버스의 다에리 소프트, 넥스트도어즈의 얼라이언스다. 이들은 게임 퍼블리싱, 리파인 프로젝트, 협업 체제 구축 등 각각의 방향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이들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진 국내 인디게임씬의 현실에 근거한다. 더 이상 인디게임이라는 키워드로 버프나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문가 그룹이다.

그저 자본력이라는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메이저 게임업계보다 한 발짝 빠르게 움직이는 신속성을 담보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결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자신들의 뜻에 어울리는 파트너를 찾았고, 빠르지 않으나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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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스트 그룹, 나누컴퍼니
탭 퀘스트, 파이널 탭타지, 다크 소드로 알려진 나누컴퍼니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특유의 서비스 능력을 나타내며, 소수 정예의 게임을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라인업의 숫자가 아닌 확실한 킬러 콘텐츠다.

그래서 게임을 알아보는 선견지명을 앞세워 개발사와 협업을 진행, 개발사와 서비스사라는 메이저의 퍼블리싱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성공을 위한 목표를 위해 철저한 분업으로 업무 속도를 증강,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이다.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나누컴퍼니는 자신들과 함께 하는 게임 자체를 플랫폼처럼 구축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그래서 인디씬에서 보기 힘든 경이로운 수치인 '누적 다운로드 100만 돌파'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나누컴퍼니는 메이저의 갑과 을이라는 불리는 관계를 국내 인디씬에서 그들만의 능력으로 '스페셜 리스트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움직이는 전문가 집단으로 변모시켰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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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에리 유니버스, 다에리소프트
다에리 유니버스의 개념은 리파인(refine)에서 출발한다. 다에리소프트가 소개하는 게임은 이전에 선보였던 게임, 즉 중고 신인이다. 현재 유니버스에 합류한 게임의 이면을 살펴보면 게임 외적인 요인에 의해 존재를 모른 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게임들이 태반이다.

과연 이 게임이 재미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말 시장에서 게임의 이름도 모르고 종료한 것인가? 라는 일반적인 물음에서 유니버스가 출발했다.

그래서 게임의 이름부터 알리는 기본부터 시작한다. 원래 리파인은 이전에 생각했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재편,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게임의 이름을 미묘하게 바꾸거나 출시 이후 이전 버전에서 하지 못했던 운영의 묘를 살리는 데 승부수를 던진다.

사실상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검색 엔진 최적화)로 점철된 홍보와 마케팅 능력은 인디씬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보유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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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얼라이언스, 넥스트도어즈
지난 8월 말에 시작된 넥스트도어즈의 얼라이언스는 서로 도울 수 있는 게임과 개발사의 입장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함께 더불어 살자!'라는 취지에서 5인 이하+자체 출시 게임, 국내 구글 플레이 스토어 인기 게임 순위 540위 이내, 다운로드 엠블럼 1만 이상, 동시 노출 수 최소 30일 이상 유지 등의 조건이 존재한다.

이러한 조건은 차별이 아니라 정말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를 찾는 일종의 매칭이다. 넥스트도어즈가 1인 개발자로 출발한 덕분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강한 유대감을 앞세워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 번쯤 생각했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국내 인디씬의 얼라이언스를 구축했다는 평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나누컴퍼니, 다에리소프트, 넥스트도어즈는 국내 인디씬을 삼분지계로 구분한 이들이 아니다. 단지 남들보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시작했고, 서로의 영역에서 No.1을 향해 달려가는 주자에 불과하다. 살아남겠다는 말 한마디로 각종 음해와 모략, 추잡한 행태로 움직이는 메이저와 다른 움직임이다.

예년과 달리 국내 인디씬도 정글의 법칙처럼 생존을 위한 전략이 절실해졌고,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가 집단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존재 이유만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는 개발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년 9월, 길지 않은 국내 인디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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