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마켓 개설해도 고사 위기, 연쇄파산 가시화 불가피



"이제 한계라서 버틸 수가 없다. 은행들도 예전과 같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듭니다"- ㄱ 거래소 이사

"저희도 회사인데 급여나 처우 면에서 밀리니까 떠나가는 직원을 붙잡을 명분이 없죠. 같은 코인이면 업비트나 빗썸을 쓸 텐데, 인지도나 경쟁력에서 밀린 상황에서 원화마켓이 생겨도 사람이 있어야죠" - ㄴ 거래소 대표

"아사 직전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업계는 죽었어요. 메이저만 쓰는 데 소형을 쓰겠습니까. 당국이나 은행이나 책임지기 싫고, 시간만 끌다가 알아서 폐업하는 것만 보면 된다. 거래소 망하면 우리 책임이라고 몰아세울 거 아닙니까. 그게 공무원 스탠다드지" - ㄷ 거래소 상무

위의 이야기는 거래소 업계 관계자의 말을 순화해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듣는 의견은 격앙된 목소리에서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나올 정도로 정부 당국을 향한 날 선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가상자산이라는 용어와 범위를 정의한 특금법 시행 전 국감 때 언급된 거래소 4곳은 시간이 흘러 BIG 4가 됐고, 이후 실명계좌를 발급받아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DAXA의 전신이 됐다. 이에 비해 VXA로 묶인 코인마켓 거래소는 실명계좌 없이 운영하는 덱스(DEX)와 다를 바 없는 사업자로 전락, 폐업 위기에 내몰린 지 오래다.

몇 년 사이에 고팍스와 한빗코가 실명계좌를 발급받았지만, 이와 비슷한 규모의 거래소는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미팅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 거래소에서 벌어질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연대 책임론과 사회면을 장식하는 부정적인 이슈에 대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ISMS 인증번호와 실명계좌는 원화마켓 거래쌍을 개설할 수 있는 필수 요소이며, 현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ISMS 인증번호로 신규 사업자 진입 장벽도 막아놓고, 바스프(가상자산사업자) 전용 ISMS와 예비인증 등 일부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현장서 체감하는 혜택은 없다.

이미 국내외 암호화폐 업계의 불황이 겹치며, 탈블(거래소 업계를 이탈, 이직) 현상이 심화돼 인력난과 경영난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거래소가 두루 있다. 이들은 ISMS 갱신 심사 과정도 집중할 수 없고, 사실상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사업자로 전락했다.

ㄹ 거래소 실장은 "은행에서 미팅하자고 해서 발표 자료를 충실히 준비했지만, 정작 미팅 당일 일정이 취소돼 낭패를 겪었다"라며 "남들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벼랑 끝에 내몰린 최후의 선택이다"라고 강조한다.

ㅁ 거래소 상무는 "실명계좌를 발급받아 신고 수리를 완료해도 바로 원화마켓에 올릴 프로젝트를 찾는 것도 급선무다"라며 "플랫폼 독점이 아닌 이상 재단은 인지도와 거래량을 담보할 수 있는 사업자를 찾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의 볼멘 목소리는 이전보다 강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억울한 사업자가 맞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특금법 이전 벌집계좌와 상장 브로커, 던지기 등으로 점철되는 무법지대 시절의 거래소였기 때문이다.

한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는 대한민국 코인의 메카였다. 정확히 역삼역부터 선릉역까지 테헤란로 주변에 몰린 각종 대행업체와 에이전시의 난립으로 '알트만 찍으면 돈이 된다'는 우울한 황금기가 있었다. 

홈페이지와 백서 제작 대행, 텔레그램과 SNS 운영 대행, 밋업과 사무실 임대 등 모든 것이 분업화, 심지어 밋업 행사에 케이터링 서비스와 기념품 상품 수주, 밋업을 채우는 엑스트라까지 동원하는 등 스스럼없이 프리세일과 에어드랍, 상장 예고를 남발하던 시절이 존재했다.

그 시절을 겪었던 거래소는 일부 폐업했지만, 당시는 기획파산이라고 할 정도로 거래소 홈페이지와 지갑 해킹과 유출 등 온갖 핑계를 대면서 특금법 시행 이전에 모두 종적을 감췄다.

그 중에서 거래소 일부가 현재까지 살아남으면서 때아닌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신나게 벌던 시절에는 세력, 지금처럼 힘들 때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면서 사라져야 한다는 강성론자들의 뼈있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현재 실명계좌 발급을 받아도 거래소가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로지 현물 거래 수수료 외에는 먹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알트코인 상장은 위험하고, 예전처럼 상장 전후로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은 곧 거래소의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실명계좌보다 그동안 홀더들에게 각인된 거래소 업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독이 됐고, 이를 제때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동정론도 희미해졌다.

과연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지 의문이다.



원화마켓 운영에 필요한 실명계좌 발급, 고팍스 이후 잠잠




"#1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정작 미팅했다고 해서 뾰족한 답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막연히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 - ㄱ 거래소 이사"

"#2 힘들게 ISMS 받아서 서류 제출하면 뭐 하나. 규제 샌드박스처럼 2년 동안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고, 벌집 계좌 쓰기 싫어서 힘들게 특금법에 맞춰서 준비했어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ㄴ 거래소 팀장"

"#3 항상 실명계좌 발급 유력 후보군으로 손꼽혀도 변한 게 없다. 다른 사업을 추진하려고 해도 원화마켓이 없어 제약이 많다. 설령 원화마켓이 열려도 상장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 발굴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ㄷ 거래소 대표"

고팍스 이후 실명계좌 발급이 사실상 멈춰 '정말 이러다 눈까지 멀겠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어느덧 11월이다. 트래블 룰 솔루션과 AML 전문가 영입, 금융 당국의 실사 등 원화마켓을 운영 중인 5개 거래소와 같은 기준으로 규제를 받아도 이들에게는 실명계좌가 없어 'KRW' 거래쌍을 만들 수가 없다.

오지스가 개발한 덱스 '클레이스왑' / 이미지=클레이스왑 홈페이지 갈무리

22일 국내 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해 원화마켓을 개설할 수 없고, 코인마켓 외에는 매출 동력이 없어 고사 위기에 몰려 거래소 몇 군데는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명계좌 발급을 1순위로 점찍고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항상 다음 단계가 없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특히 이들의 눈에 보이는 덱스(DEX, Decentralized Exchange)의 존재는 눈엣가시다. 분명 거래소의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ISMS나 실명계좌가 없으며, 일부 사업자를 제외하면 KYC나 AML 책무도 없어 현재 시행 중인 특금법의 사각지대로 꼽힌다.

특금법에 명시된 가상자산 사업자는 ▲매도와 매수 ▲교환 ▲이전 ▲보관과 관리 ▲매도, 매수, 교환 등 중개와 대행 등 총 5개의 행위를 토대로 영업하면 바스프에 해당한다. 또 DEX는 업비트나 빗썸처럼 CEX(Centralized Exchange)보다 상대적으로 AML이 취약해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예년과 달리 프로젝트팀이 DEX와 NFT를 취급하면서 이들의 존재가 부각될수록 원화마켓을 열망하는 거래소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국내외 프로젝트팀의 행태는 싱가포르와 에스토니아 등에 법인을 설립해 '역외 규제'가 아닌 이상 이들이 운영하는 DEX의 존재는 특금법 기준에서 불법이다.

가상자산사업자 ISMS/ISMS-P 인증서 발급 현황 일부 / 자료=KISA

그 이유는 바스프의 교환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국내 게임업체가 먹거리로 찜한 P2E 사업과 배치, 덱스 사업자는 곧 바스프처럼 신고 수리가 필요한 사업자의 범위에 포함된다. 비록 특금법이 게임법보다 늦게 출발한 제도권 진입의 초석이지만, 다른 업계의 먹거리 보장을 위해 또 다른 업계의 규칙을 깰 수가 없는 '이해충돌' 상황에 놓인 셈이다.

그렇다면 DEX를 운영 중이거나 준비 중인 사업자들도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

ㄹ 프로젝트팀 실장은 "덱스는 월렛과 함께 메인넷을 구축하는 데 있어 필수 요소로 생태계 확장과 보전을 위해 필요한 축이다. 다만 금융당국에서 연락온 적도 없고, 케이스 스터디 결과 굳이 먼저 신고 수리를 위한 일련의 과정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ㅁ 프로젝트 팀 리더는 "몇 년 전 유행했던 재단의 법인을 싱가포르로 정했고, 내년 2분기에 싱가포르의 라이센스가 필요한 상황이라 사업장 소재지를 이전할 계획"이라며 "이미 NFT나 덱스가 자금세탁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 규제 옥죄기를 알고 있지만, 미리 준비할 생각은 없다. 관련 법도 없는데 우리가 어긴 게 있느냐. 그게 아니라면 덱스를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짓는 것은 위험한 생각 아닌가"하고 반문했다.

기존 사업자 유예 6개월 만료 앞두고, 실명계좌 발급 불투명 고려




지난 3월 25일 시행된 특금법의 기존 사업자 신고 수리 마감이 오는 24일 종료된다. 이전부터 특금법은 국내 암호화폐 업계의 제도권 진입이 아닌 자금세탁방지가 초점이 맞춰진 암호화폐 규제안으로 거래소 업계를 중심으로 재편이 진행 중이다.

이미 특금법 시행에 맞춰 신고 수리 서류에 필요한 ISMS 인증과 실명계좌 발급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며, 신고 수리-신고 접수 등으로 거래소의 생존게임이 진행된 지 오래다.

19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등에 따르면 업비트만 신고 수리됐으며, 빗썸을 비롯한 코인원, 코빗, 플라이빗 등 4개의 거래소와 지갑 사업자로 분류된 한국디지털에셋 등 총 5곳의 사업자가 정식 영업을 위한 신고 서류를 접수했다.

정부 당국은 특금법에 명시된 최대 90일의 심사기간 대신 업비트를 30일 만에 국내 1호 암호화폐 거래소로 인정했다. 싱가포르나 일본 등의 라이센스 개념 대신 '신고 수리 완료'라는 용어로 대체, 업계는 빗썸과 코인원, 코빗 등 3개의 거래소가 업비트의 뒤를 이어 BIG 4를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 원화마켓 종료 공지가 없었던 고팍스와 지닥은 실명계좌 발급 유력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를 두고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원화마켓 서비스 종료를 알렸던 다른 거래소와 달리 24일까지 신고 접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 막판까지 최종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는 "영업을 종료하는 경우 늦어도 9월 17일까지는 이용자에게 영업종료를 공지하고, 9월 24일까지 모든 거래서비스를 반드시 종료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정부 당국은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과기정통부, 법무부,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가상자산사업자 ISMS 인증 취득 사업자 40곳'의 명단을 모두 공개했다.

이들은 적어도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해 원화마켓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신고 수리 서류를 접수할 수 있지만, 그 외 ISMS 인증번호조차 획득하지 못한 사업자는 폐업이 확정돼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공개한 것.

현재 ISMS 인증번호만 획득한 사업자 중에서 거래소는 원화마켓을 포기하고, 신고 서류를 접수하고 있다. 이미 후오비코리아, 포블게이트, 캐셔레스트 등의 거래소는 원화마켓의 서비스를 중단하고, 테더 마켓(USDT)과 비트코인 마켓(BTC) 마켓 등만 남기고 있다.

생존을 위해 원화마켓을 포기했지만, 6개월 이내에 실명계좌 발급과 트래블 룰 적용 등 이중고가 겹치면서 이전보다 프로젝트 상장과 신규 사업 추진에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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