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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카드 RPG가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하무트와 밀리언 아서로 촉발된 카드 RPG 붐은 모바일 RPG에 자리를 내어주기 전에 봇물이 터진 것처럼 우후죽순 등장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며, 일부 카드 RPG가 명맥을 유지하거나 자취를 감췄다.

이후 글로벌 진출이라는 명목으로 해외 진출에 나섰지만, 정작 성적이 신통치 않아서 서비스를 종료했다. 지금은 사라진 데빌메이커 도쿄 for Kakao, 그라나사 이터널, 소환사가 되고 싶어 for Kakao가 대표적인 예다. 그나마 생존해서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은 큐라레 마법도서관과 사커 스피리츠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일본에 진출할 때마다 '일본 유저들의 성향과 최신 트렌드를 적극 반영'이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현지 파트너와 계약을 체결하고, 호화 성우진을 기용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진행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보여준 결과는 국내의 상승 곡선과 달리 하강 곡선을 그렸다. 혹자는 일본에서 카드 RPG도 주춤한다는 의견과 함께 게임 자체가 가진 콘텐츠의 힘이 약했던 것이라 말한다. 그만큼 실패의 원인을 콕 집어서 단정 지을 수 없는 탓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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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 지났다?

카드 RPG를 논할 때 일본을 본고장이라 불렀다. 표준화가 진행된 것처럼 규격화된 디자인과 일러스트, 성우진까지 활용할 수 있는 곳에서 카드 RPG의 유행은 당연했다. 이전부터 다져진 팬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었고, 다크 판타지나 미디어믹스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기반의 카드 RPG가 쏟아졌다.

밀려드는 수요 탓에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카드 RPG는 한계가 있었고, 일본에서 유수 퍼블리셔가 배포한 카드 RPG가 자석처럼 모든 매출을 흡수해 나갔다. 그러나 변수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에서 발생했다.

스마트 폰 사양의 좋아지면서 이전과 달리 카드 RPG보다 앞선 모바일 RPG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CCG를 카드 RPG로 통칭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일러스트로 감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RPG는 필드와 던전에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카드 RPG는 일순간 사라지지 않았지만, 서서히 모바일 RPG에 자리를 뺏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본과 국내에 그치지 않고, RPG가 대세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결과 일본에서 카드 RPG는 유행이 지난 상품으로 전락했고, 빈자리를 모바일 RPG가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부 카드 RPG가 플랫폼을 바꿔 서비스를 이어갔지만, 미온적인 반응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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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로 승부할 수 있었나?

수집과 도감에 집중한 기간 배수 카드의 등장은 지금도 통하는 부스팅 기법이다. 특정 기간에 얻을 수 있는 카드의 성능은 매출의 상승 곡선을 그리는데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했다. 바로 밸런스 붕괴다.

속칭 카드 RPG의 밸런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말이라 부른다. 밸런스보다 기존 카드보다 강하고 확실한 욕구만 자극한다면 목표 매출을 달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 게임 내의 밸런스는 무너졌고, 이를 수습하는 것보다 그저 새로운 카드를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이러한 방식을 논할 때 콜라보레이션은 플레이 동기가 아닌 구매 동기를 자극하는 데 한 몫 거들었다. 그 결과 밸런스 붕괴와 유저 이탈로 이어져 서비스 종료의 원인으로 떠오른다.

일본에 진출한 국내 카드 RPG도 현지화를 명목으로 현지 파트너를 선정하고, 이들의 힘에 의존한 구조는 아니었다. 적어도 콘텐츠가 가진 매력이 충분했음에도 단지 매력을 강조하는 일에 그쳤을 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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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카드 RPG의 기본적인 콘텐츠는 현지에서 서비스 중인 콘텐츠와 다를 바 없었고, 일부 시스템만으로 성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 신선함과 익숙함의 경계에서 국내 카드 RPG는 현지에서 확실한 매력을 내세우지 못한 채 서비스 종료를 맞이했다. 그래서 말처럼 간단한 현지화 콘텐츠와 시스템이 아닌 처음부터 일본의 게임처럼 보이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나마 이후에 진출한 국내 카드 RPG의 오답 노트가 되어 자양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게임 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그들에게 실패는 자명한 사실이 됐다. 그저 철이 지난 유행과 콘텐츠의 힘이 약해서 실패했다는 추정으로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현지 파트너나 퍼블리셔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유를 막론하고 흥행에 실패한 상품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원래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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